2014년 5월 11일 일요일

3월의 라이온




꽃피는 봄이 오는 3월을 맞아 재개하는 본격 신간만화탐방 그 열 세번째!
오늘의 마루타는 우미노 치카의 신작 『3월의 라이온』입니다.
요새는 계속 따끈따끈하다 못해 잡고 있으면 손바닥이 타들어갈 듯한
쌩쌩한 신간들만 골라잡는 느낌이 드는데 분명 기분 탓이겠지요...
.
원래는 슬픈 과거를 안고 사는 천재 장기 소년 레이가 옆집 세자매와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세상에는 장기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바둑도 있다는 경이로운 사실을 깨달아 가는 휴머니즘 만화였습니다만,
늘 그렇듯이 제 취향에 맞게 각색, 편집, 해체되었습니다.

라이센스가 아직 없는 작품이므로 대사는 적당히 밀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살펴볼 부분은 제1화 「키리야마 레이」.
그럼 갑니다.
















꿈을 꾸는 레이. (이 만화의 정체성 = 주인공)
일어로 레이(零)는 숫자 0과 같은 뜻이라서 저런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 근데 학교 안 가는 거는 솔직히 조금 부럽다.








꿈의 끝에서.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아침 먹고 해야 하는데 방이 휑해서 인간 사는 집 같지가 않습니다. 세기말이니까요.









어쨌든 대충 몸단장하고,








오늘도 장기 두러 갑니다. (아래쪽 건물이 장기회관)









오늘의 상대는 레이의 아버지.
친아버지는 아니지만, 장기의 스승이며 레이를 어릴 적부터 키워 준 사람입니다.









"잘 지냈느냐, 레이?"
"그렇습니다. 이제 저도 남두수조권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었습니다."

말칸에 아래쪽 대사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레이가 전음을 썼기 때문입니다.










고수들 사이에 너스레는 필요 없죠. 바로 건담파이트 레디고.








"넌 이미 두고 있다."
"호오...... 남두수조권에도 그런 대사가 있었는가."









승부 났습니다.










설령 부자관계라고 해도 패자는 승자의 앞에 목을 내밀어야 하는 냉엄한 장기의 세계.
레이에게 비공이라도 찔릴까 두려운 아버지는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만,











그는 관심법을 체득하였으므로 노란 머리 고딩 싸이코메트러보다도 남의 마음을 더 잘 맞춥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베는 살벌한 장기의 세계.










하지만 전사에게도 핸드폰은 필요하지요.

같은 동네에 사는 유리아. 아니... 히나타가 문자를 보냈습니다.
카레 먹으러 오랍니다.













"이거 뭐 내가 시엘 선배도 아니고 남두수조권을 뭘로 보는 플레이...."
속으로는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정중하게 거절 문자를 보내는 레이.

















하지만 답장을 다 보내기도 전에 또 문자가 옵니다.













이번에는 큰언니 아카리의 명령입니다.
왜 야채 절임이 없으면 카레를 못 먹는지는 제게 묻지 마십시오. 세기말엔 그런가 보지요.














아무리 수라의 길을 걷는 세기말 패자 후보라고 해도
상대는 네오 베네치아 처녀뱃사공.
거절하면 또 부끄러운 대사를 한 세트 들을지 누가 압니까?














결국 심부름하는 레이. 아따 착하다..












아카리네 집은 3자매입니다. 구성원은 아카리 - 히나타 - 모모.
지금 보급품을 보고 눈을 번뜩이는 아이가 바로 모모입니다.
이외에도 축생이 몇 마리 있습니다만 86따위는 out of 안중.













오른쪽부터 아카리, 히나타, 모모.
... 아니 그런데 이거 왜 장기만화에서 하렘의 향기가?













어린 것들은 그저 단것이 최곱니다. 레이도 작업의 ABC를 잘 알고 있군요.











세기말 패자는 인심도 후해요. 심부름 하고 돈도 안받아요.













오늘의 혈투에 관해서 물어보는 히나타.











대충 번역하면,

"후...... 무츠원명류. 아니... 남두수조권 천년 역사에 적은 없다."
"어머 어머 남두수조권 전승자 레이는 역시 킹왕짱이야"

















금강산도 식후경.











아무리 세기말이라도 조상님께 먼저 한 그릇 올리고 숟갈 드는 건 기본 예의죠.












눈치가 빠른 히나타가 레이의 몸 상태가 조금 이상함을 눈치챕니다.
사실 레이도 아까 아버지 템 레이에게 비공을 찔렸던 것이죠. 인생만사 별거 있습니까?













하지만 레이는 이까짓 것 자면 낫는다 하면서 얼버무리고,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합니다.












먹었으니 자야지요.
풍호 형님 말마따나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는 것이 파일럿의 임무.













피곤해서 안경도 안 벗은 채로 잠든 레이.












히나타는 살짝 안경을 벗겨보는데,













자라보고 놀란 사람처럼 깜짝 놀랍니다.












왜냐면 레이의 맨 얼굴이 너무 귀여워서.
... 가 아니고 이카리 사령관님의 안경을 빼앗기자 레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놀란 것입니다.
원작대로라면 여기에서 유도기술 업어치기가 한방 들어가고 서비스씬이 나옵니다만.















불쌍한 것. 네가 비공을 찔려도 대용품은 얼마든지 있단다. 더미 시스템이니까.
하는 표정으로 이불을 덮어주는 히나타.
















아야나미 레이, 그것이 나의 이름.
커다란 제3신동경시의 작은 마을에서 이제부터 나는 살아간다.













나이 15세, 퍼스트 칠드런.
직업 중학생 겸 인조인간 에반게리온 파일럿.





챕터 1 끝났습니다.


































『슬램덩크』의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사무라이를 소재로 한 만화 『베가본드』를 그리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노우에니까 기대한다" 는 그의 팬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반응부터 시작해서, 슬램덩크가 과거 국내 만화시장에서 만화를 '사서 보는' 계층을 어느 정도 형성하고 있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던 일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양반이 본드 불고 만화 그리나" 하는 극단적인 야유까지. 그만큼 당시에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시장의 중심에 서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허니와 클로버』로 여성 독자 외에 남성 독자에게까지 사랑을 받으며 그 독특한 화풍과 감수성으로 순정만화계에 이름을 날리던 우미노 치카가 차기작으로 무려 장기만화, 그것도 영애니멀이라는 잡지에서 연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독자들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1권이 출간된 지금 『3월의 라이온』이 어떤 작품이냐고, 볼만하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글쎄요. 뭐라 잘라 말하기 힘듭니다. 일단 만화 자체는 우미노 치카의 장점 (가벼운 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그림, 종종 터지는 훌륭한 시적 감수성) 도, 단점 (읽기에 피곤한 컷 구성, 가끔 이야기가 진행이 되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짧고 내용 없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월간지분의 에피소드도 있는 등 들쭉날쭉한 길이와 품질) 도 다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터라 우미노 치카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실 분이라면야 아무 생각 없이 추천할 수 있겠습니다만, 『허니와 클로버』가 너무 좋아서 이 작가의 다음 작품도 꼭 보고 싶은데 과연 어떤가 하고 물어보시는 분께는 그냥 직접 보시라고 하는 게 더 좋은 선택일 듯 합니다.

일단 이 만화는 장기만화, 그것도 일본 장기를 중심으로 하는 만화입니다. 제 경우엔 일본 장기는 고사하고 국내에서 하는 장기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습니다만 이 만화를 읽는 데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고, 군데 군데 감수를 담당한 장기 기사 분께서 기고하신 일본 장기에 대한 기초 지식도 실려 있으니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장기를 모른다고 해서 크게 재미가 떨어지는 만화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와는 크게 관련 없이 돌아가는 에피소드에서도 주인공 레이와 다른 인물과의 대화에서 장기와 관련된 이야기 (내일이 대국이라서 빨리 들어가 자야겠다거나, 장기로 한 달에 얼마 버냐거나, 오늘 이겼냐거나) 를 종종 나누고, 장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에피소드에서는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읽을 줄 모르면 등장인물의 표정만 보고서 누가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앞으로도 장기를 모르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될지 어떨지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독백을 할 때마다 푹푹 가라앉아 버리는 분위기 때문에 바닥에 배 깔고 누워서 편하게 보기엔 영 뭐하다는 점도 이 만화를 선뜻 추천하기 힘들게 합니다.

아무튼, 1권 내내 펼쳐지는 사건들을 살펴봐도 이 만화가 과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를 잘 모르겠다는 게 제 솔직한 감상입니다. 다소 폐쇄적인 천재인 주인공 레이가 아카리, 히나타, 모모 세 자매와의 만남을 통해서 뭔가 변해갈 거라는 점은 기본적으로 예상이 됩니다만, 그 과정에서 순정만화의 상징인 연애를 끼워 넣을 것인지, 아니면 계속되는 대국과 장기인들과의 만남으로 본격 장기만화로 갈 것인지, 혹은 거의 파탄나다시피 한 주인공과 가족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는 가족 드라마로 갈 것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혹은 이 모든 걸 다 하려고 들지도 모르는 일이죠. 주인공은 이미 장기 대회에 참가하고 있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모모는 제외한다고 해도 중학생인 히나타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카리와는 연애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장기계에서도 벌써 선배가 두 명, 라이벌이 한 명 등장한 상태인데다가, 주인공은 4살 위의 누나인 쿄코나 남동생 아유무,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앞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캐릭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끝으로, 일본어 잘 모르지만 사전 찾아가면서라도 보시고 싶다는 분들은 극구 만류하고 싶습니다. 한국어판으로 볼 때도 느꼈던 부분입니다만 원서로 보니까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우미노 치카의 단점인 불편한 구성 덕분에 한 권 보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만화 중 하나입니다. 웬만하면 라이센스를 기다리시면서 『허니와 클로버』 한번 더 읽으시는 게 좋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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